2020. 5. 21. 21:41ㆍMLB
짙은 초록색이 물든 이맘때쯤이면 떠오르는 기억 중 하나로 오하이오주 신시내티에서의 바비큐가 있다.
지금으로부터 17년 전이 되는 2003년 6월 2일의 오후. 정확히 말하면 신시내티의 다운타운과 오하이오 강을 사이에 두고 인접한 켄터키 주 데부파크라는 작은 거리에 있는 공원에서 일어난 일이다.
모인 사람은 일본인뿐으로 30~40명. 그 주역을 맡고 있던 사람은 당시 뉴욕 양키스의 1년째 플레이어였던 마츠이 히데키다.
뉴욕 양키스 시절 마츠이 히데키
일본에서 온 홈런왕 '고질라'로 3년 총액 2100만 달러로 미국 최고의 전통 구단에 영입된 그는 '5번 타자'로 기대를 모았다.
토론토에서 열린 개막전에서 첫 안타, 첫 타점과 본거지 양키스타디움 만루탄 데뷔 등 스타트는 화려했지만 전날 타이거즈전까지 남긴 성적은 56경기에서 236타수 60안타, 33타점, 타율 0.254, 홈런은 고작 3개.
▶땅볼킹이라는 불명예스러운 칭호.
당시는 무빙볼 전성시대. 손아귀에서 도망치거나 가라앉거나 하는 바깥쪽 투심에 시달려 "지금까지 본 적이 없는 공"이라고 말하며 2루 땅볼, 1루 땅볼을 반복했다.
GODZILLA의 별명과는 거리가 먼 타격 내용에 5월이면 뉴욕의 비트라이터로부터는 땅볼킹이라는 달갑지 않은 별명을 얻었는데 보도한 것은 뉴욕 포스트나 데일리 뉴스 등의 타블로이드지가 아니라 미국 굴지의 퀄리티 페이퍼로 불리는 뉴욕타임스였다.
기사를 집필한 타일러 케프너 기자에게 그 의도를 묻자 "GROUND BALLOUT(내야 땅볼)이 생각보다 많으니까"라고 심플한 대답이 돌아왔다.
어떤 경우에도 부동심을 유지하고 희로애락을 드러내지 않는 마츠이 히데키이면서 요즘 그는 머쓱했다. 그런 그를 "기분 전환이나 하자!"는 생각으로 번기자가 꾀어낸 것이 바로 바비큐였다.
▶선수와 기자라기보다는 우정.
이날은 다음 날부터 시작되는 레즈전을 앞둔 원정지 휴양일. 기자들은 오전부터 현지 슈퍼에서 구매하기 시작했고 모임은 해질녘까지 이어졌다. 평소 술을 마시지 않던 기자가 맥주를 마시며 쾌활하게 행동하면서 결코 능숙하지 못한 노래로 흥을 돋우고 은밀히 장기자랑을 한 이도 있었다.
선수와 기자의 모임이라기보다 우정이 그 자리를 지배하고 있었다.마츠이도 기자진의 기분에 응해 이런 말을 외쳤다.
"이제 땅볼킹이라고 부르게 하지 않겠다!"
날이 저문 언덕에서 최고조에 이른 순간이었지만 다음날 레즈전에 2번 좌익으로 출전한 마쓰이는 첫 타석에서 졸지에 부스스한 땅볼. 그 다운 오명도 붙었다.
하지만 마쓰이는 이 원정지에서 약속대로 대폭발을 이뤘다.
7번으로 강등된 6월 5일 경기에서 5타수 4안타 3타점 1홈런의 맹활약. 안타는 모두 장타라는 GODZILLA 다운 타봉. 이후 신시내티의 대폭발로 불리게 된 메이저리그 커리어의 전환점이다.
6월 월간 성적은 104타수 41안타, 6홈런, 29타점, 타율은 0.394. 땅볼킹에서 RBI 머신으로 거듭났고 이후 그는 현역 은퇴 때까지 CLUTCH(클러치. 승부에 강한) 칭호를 얻기도 했다.
▶15센티 이동한 타석의 서는 위치.
당시 마츠이는 전환의 계기가 된 6월 5일의 시합에 대해 이렇게 설명해 주었다.
"경기 전 조(토레 감독)가 불러서 (외각구에 시달리고 있다면) 좀 앞에 (홈플레이트보다) 서 보라고 했어요. 이전에도 몇 번인가 말했지만 그 경기는 반족문(약 15cm) 앞에 서 봤죠."
홈플레이트 방향으로 좀처럼 다가가지 않으려 했던 이유에 대해 그는 "나에게 있어서 공을 보는 방식이 어긋난다"라는 표현을 썼다. 자기 나름의 존이 바뀌어 버린다는 의미라고 해석한 것이, 그는 가까워진 것으로 타격이 바뀌었다고는 결코 말하지 않았다. "우연히 일지도 모른다"라고 했고, "몇 시합 후에 서는 위치는 원래대로 되돌렸다"라고도 설명했다.
▶라면집은 국물을 끓이는 법을 가르쳐주지 않는다.
그렇다면 무엇이 달라졌는가. 이쪽이 집요하게 물어보려 하자 장난기 어린 미소로 연기를 감쌌다.
"라면집 주인이 국물 내는 법을 '네, 이렇게요'라고 안 알려주잖아요. 그거랑 똑같아(웃음)."
새로운 환경에서의 적응에 마쓰이는 256타석이 필요했다는 계산이 나오지만 결코 잔재주라고는 할 수 없는 그를 나타내는 에피소드인 동시에 거기까지 기다려 준 조 토레 감독이 가진 그릇의 크기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와 동시에 마츠이와 번기자의 사이에는 '좋은 공기'가 흐르고 있던 것을 지금 상기한다. 너글너글하고 관용적인 마츠이 히데키의 성품이 이루어 낼 수 있는 과업이었음은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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